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근혜/대통령 이전 평가 (문단 편집) === 선거의 여왕 === 박근혜는 98년 재보선을 통해 정계에 들어오고 난 후 본인이 출마한 선거에서는 거의 대부분 당선됐다. 07년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에서 이명박에게 접전끝에 석패한 것이 유일한 패배였을 뿐이다. 그나마도 당내 경선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 선거 본선에서 진 적은 없다. 08년 친박계가 대규모로 낙천했을 때인 18대 총선에서도 본인은 당선됐다. '''당 지도부로서 선거를 이끌 때도 대부분 승리했다.''' 박근혜가 대구 달성군에만 출마를 했기 때문에 안방 챔피언이라는 평가 절하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박근혜가 선거의 여왕이 된 이유는 전국 선거에서의 승리이다. 당대표와 비대위로서 총 4번에 선거를 치뤘는데 3번 승리를 거뒀으며, 나머지 1번의 패배도 좋지 않은 상황속에서 120석울 지켜내 선방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또한 대통령이 되어서도 20대 총선 전까지는 지방선거와 각종 재보궐선거에서도 승리를 했다. [[17대 총선]]: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역풍으로 [[한나라당]]의 완패가 예측 됐던 [[17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대표로서 120석 이상을 얻어 예상 이상의 선방을 해냈다. 천막당사 등 절실한 한나라당의 모습을 어필한 것이 선방의 주요원인으로 분석된다. [[2006년 지방선거]]: 이 선거 때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심판론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에"한나라당에서 개가 후보로 나와도 당선된다." 는 말이 유행햤을 정도였다. 결과는 한나라당의 완승이었다. 선거 운동 도중 면도칼 테러를 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선거운동을 완수했다. [[19대 총선]]: [[한나라당]]이 [[2011년 재보궐선거]]에서 참패를 하고 비대위원장이 되었다. 그 후 총선을 앞두고 여러 쇄신 끝에 15년만에 당을 [[새누리당]]으로 과 당색을 빨간색으로 바꾸게 되었다.[* [[한나라당]]은 15년동안 썼던 당명으로 6공화국 이후 가장 오랜기간 쓰였다.] 말기 여당의 입장에서 비대위원장으로 [[MB정부]]의 심판론을 이겨내고 과반의석을 확보했다.[* 대통령 집권 4 5년차 때가 되면 집권 여당이 대부분 졌다.] [[18대 대선]]: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치열한 선거였으며,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1대1 맞대결 구도였다.[* 양당 후보가 99.50% 득표율을 기록했다.] 당시 야당은 정권심판론을 내세웠고 박근혜의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라는 보수진영에서는 쉽게 던질 수 없던 아젠다를 던지면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한 과거 투표율 70%가 넘으면 진보진영의 후보가 유리하다는 것이 정설이었으나 당시 박근혜 후보는 75% 높은 투표율에도 당선이 되었다. 공식적으로 지원하지는 않으나 박근혜 개인의 이름 내건 [[미래희망연대|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 연대]]'가 [[18대 총선]]에서 대선전하여 친박연대 14명, 무소속 연대 12~16명[* 12~16이라고 한 것은 친박계가 확실한 사람과 굳이 계파 분류를 하자면 친박계로 분류되는 사람을 포함한 표현이기 때문이다.]이 당선 되었고 특히 친박연대의 비례대표 득표율은 당시 제3당이었던 [[자유선진당]]보다 높은 득표율을 냈다. 당시 박근혜의 이름값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즉, 박근혜 본인이 직접 이끌었던 선거는 모두 승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